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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2회 작성일 23-10-0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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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왜 무엇을 기다렸나?


 

■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미련(未練) 그리고 복수(復讎).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의 미련, 그리고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복수.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혹은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해를 당하는 경우,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못다 이룬 일에 대한 미련과 복수를 꿈꾼다. 많은 복수 중에 오늘의 복수는 문화복수이며, 책을 써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는 왜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아직도 짐심어린 사과도 처벌도 없어서 기다림이 끝나지 않고 미련이 남는 것이다. 우리는 그 미련과 복수를 멋지게 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521년 메디치가문 반대 혐의로 투옥, 스트라파도라는 끔찍한 고문을 6번이나 당하고 살아 남는다. 그리고 1523년 농장으로 은둔하여 집필에 몰두하여 1532년 군주론을 탄생시켰다.

두 손을 뒤로 묶여 끌어 올렸다, 떨어뜨리는 형벌 (스트라파도)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사상을 담은 군주론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2.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개신교 신자가 된 번연은 ‘번연 주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복음 전도자로서 설교활동을 성실히 하였다. 하지만, 번연이 살던 시대의 국왕인 찰스 2세는 영국 국교회 즉, 영국 성공회를 제외한 기독교 교파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침례교도인 존 번연은 비밀집회(허가 없이 복음을 전한) 혐의로 12년 동안 투옥되었다.

거기서 자서전 <은총이 넘침>을 쓰고, 일생의 역작이며 그의 명성의 전부인 <천로역정> 1부를 썼다. 2부는 6년 뒤인 1684년에 완성시켰는데, 이 작품은 간결 소박한 문체로 표현한 종교 문학으로 영국 소설 발달 사상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밖에 우화로 씌어진 <성경>도 있다.

그는 1692년 유고로 출판된 《적그리스도와 그의 몰락(Antichrist and Her Ruin》책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적그리스도의 교회로 묘사하고, 적그리스도가 멀지 않은 장래에 몰락할 것임을 예언했다.

 


3.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15살 때 상인인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페오 폴로를 따라 원 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색목인을 우대하던 쿠빌라이 칸의 정책 덕분에 17년간 관리로 일하면서 중국 각 지역을 돌아다녔으며,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 여행을 책으로 묶어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다.

지중해 패권을 두고 싸우던 제노바 공화국과 베네치아 공화국[3]의 해전에서 제노바의 포로가 되었고, 같이 포로로 잡혀 있던 죄수가 폴로의 구술을 책으로 출판했다는 것이 일단 학계의 정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상인으로 성장한 그가 감옥에서 시간이 남는다고 책을 쓰는 문학인 타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폴로 가문 이전에 이미 제노바 상인들은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교역로를 잦은 왕래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직접 책을 썼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여행 후 제노바와의 해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기도 하고 하여간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1324년 사망한다. 사망 당시 그의 여행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친구들이나 유족들이 “여지껏 거짓말을 했다는 걸 고백하고 죽으라” 했지만 마르코 폴로는 “난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않았다”라는 유언을 남긴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

 


4.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신분에서 경제적으로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녔고, 빚 때문에 옥살이도 했으며, 유년시절의 가난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을 얼룩진 기억뿐이며, 학력도 불분명하다.

그러던 그는 군인이 되어 나폴리 왕국의 스페인 해군으로 지원하여 근무 중 왕이 머무는 궁정이나 성채에서 싸우면서 무기를 꺼내면 안된다는 법을 위반하여 오른손을 잘리고 10년간 마드리드에서 추방당하는 벌에 처해지자 여러지역을 전전하다 이탈리아 반도로 도망하여 추기경이 될 다른 사제의 수행원으로 르네상스 문학을 섭렵한다.

그러다 다시 해군에 입대하여 오스만제국 함대와 맞붙은 레판토 해전에서 열병에 걸리고, 총상을 입으며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고 전역한 나이가 겨우 24살 부상으로 귀국 중 해적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고, 풀려난 나이는 33세였다.

 

그렇게 갇혀 있는 동안 구상한 작품이 돈키호테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 이후 서양의 중심작가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였으며 그 이후에 나온 톨스토이나 괴테, 디킨스, 프루스트, 조이스도 그에 못 미친다고 평할 정도이며, 마드리드 중심부의 에스파냐 광장에는 그와 돈키호테, 산초의 동상이 있으며 스페인 심장부에 동상이 있다는 의미로 국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다.

이런 인물은 수없이 많다. 옥중일기를 써낸 베트남의 공산혁명가 호치민, 감옥에서 새로운 막시즘을 내세운 안토니오 그람시,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간 넬슨 만델라. 우리나라 또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홍명희의 임꺽정 등 근대의 우리나라 작품들도 옥고와 고난을 치르는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주옥같은 역사의 역작들이 많다.

현대를 돌아보아도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의 새삭은 2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쓴 책으로 옥중, 출옥 후 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마지막 강의는 지금도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5. 사마천의 오욕과 비참함 속에 탄생된 ‘사기’

성인이 될 때 아버지에게 받은 역사가의 교육, 현장경험 2~3년 동안 한나라 전역을 답사를 다닌 대 여행가이다. 그리도 당대 최고의 선생들에게 수학을 받으며 막강한 후원자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20대 중후반에 관직에 입사하여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일을 하게 된다.

당시 황제는 예비 관료가 수천명이 되었으며, 공직에 자리가 생기면 바로 입문시키는 인턴쉽형태였다. 사마천은 예비 관리가 되었지만, 세습직이라서 아버지의 국가 역사를 관리하는 자리가 비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아버지가 35세에 돌아가시고 38세에 태사령이 된다.

당시 고조선이 멸망하게 된다. 당시 기억으로 쓴 고조선 멸망기(고조선 원정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을 정리하여 작성함) 1차 사료이며 한국 고대사에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태사력이 된 후 41살에 태초 교역이라는 달력을 새로 만든다. 그전까지는 한해의 시작이 10월이라서 농사 절기와 맞지 않는다. 따라서 한해의 시작을 1월로 하는 태초력, 음력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42살 이후로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역사책을 집필하던 차에 47살에 황제의 미움을 받고 49살에 사형 선고를 받는다. 사형수가 사형을 면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은 궁형(성기를 자르는)을 자처한다. 반역자가 된 것도 억울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서 갇히고, 고문당하고, 사형선고 당하고, 궁형을 선택하는 치욕적인 현장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통해 수십번의 치욕을 기록한다.

2100년전 남자 나이 49살은 다 산 나이였다. 궁형은 사실 죽음이지만, 56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책을 완성한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인욕의 세월을 살아간 인물들이 사마천에 많이 등장한다. 그 글을 통해 사마천의 진심을 담아 역사서를 써 내려간다.

 

■결론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며 지금의 고초를 견디고 있는가?

역사의 인물들처럼 아직 마치지 못한 어떤 미련과 복수를 위해 구상하고 써 내려간 글들로 그들이 하고 싶은 복수의 글을 남겨 결국 자신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만든 멋진 삶을 산 사례를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가?

역사 속에서 기다림을 통해 성취한 사람들처럼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단련시키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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